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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관리자 06/13/2011 15571
Subject: [국민일보] ´최초 음악 선교사 마두원’ 기념 음반 낸 피아니스트 김애자씨… 혹 잊혀질까 숨겨뒀던 보물 꺼내놨죠

선교사 마두원(미국명 Dwight R Malsbary)을 아는 이는 흔치 않다. 그는 한국에 온 최초의 음악 선교사다. 1961년 김치선 목사와 함께 현 대신 교단을 창립하기도 했다.

1899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시카고의 셔우드음학대학을 졸업하고 1929년 미국 북장로교의 음악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됐다. 평양숭실전문학교, 평양외국인학교에서 서양음악을 가르쳤으며 한국의 유명한 음악가들을 배출했다. 작곡가 김동진, 전 연세대 음악대학장 박태준, 오페라 가수 채리숙, 피아니스트 한동일 백건우 등이 제자다.

1936년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하게 요구하자 마두원은 평양숭실전문학교를 그만두고 학생들과 기도모임을 만들었다. 이때 함께했던 학생들이 방지일 박윤선 목사 등이다.

그는 1977년 강원도 홍천에서 차 사고로 목숨을 잃기까지 음악뿐만 아니라 목회, 의료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제하에서 강제 추방됐던 그는 광복 후 목사 신분으로 돌아왔다. 고려신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61년 김치선 목사와 함께 대신 교단 전신인 예수장로교 성경장로회를 창립했다. 홍천군 일대에 교회 27개도 개척했고 제이드(Jade)병원도 설립했다.

최근 ‘음악 선교사 마두원’ 기념 음반이 나왔다. 피아니스트 김애자가 마두원의 찬송피아노편곡집을 재해석, 연주 앨범을 낸 것이다.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김애자는 아버지인 영창악기 설립자 김재창씨와 함께 마두원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이때 마두원이 직접 쓴 찬송피아노편곡집을 받아 보관하고 있었다.

김애자는 명문 비엔나 국립음대를 졸업하고 국내외 대형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는 찬양 사역자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석사, 텍사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0년 미국 가든 그로브의 수정교회, 2004년 뉴욕 카네기홀 등에서 연주했다. 피아니스트로 잘나가던 그는 1993년 러시아 모스크바 집회에서 소명을 받고 찬양 사역자로 변신했다.

김애자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의 음악을 소리로 남기지 않으면 귀중한 유산이 잊혀질 것 같다는 긴박감 때문에 음반을 냈다”고 말했다.

미국 교포인 그는 이번 앨범을 위해 지난 1년간 ‘피아노 동냥’을 했다. 본인 피아노가 없어 남의 피아노로 연습했다. 마침 서울 양재동의 한 교회가 피아노를 빌려줘 그곳에서 연습했다.

김씨는 “광화문에서 양재까지 매일 2시간씩 이동해야 했지만 오히려 그 시간에 기도하고 묵상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대여섯 시간씩 연습에 매달렸다. 하지만 힘들었다기보다 숨겨진 금은보화를 캐는 기분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마두원의 영성을 재현하기 위해 지인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방지일 목사와 대학 사역을 함께 했던 김상복 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 등을 만났다. 마 선교사가 개척한 홍천 교회들도 방문했다.

앨범은 클래식 음반으로 슈베르트, 멘델스존, 리스트의 낭만파 분위기가 물씬 난다. 김애자는 “멘델스존의 ‘무언가(無言歌·Songs Without Words)’의 스타일과 비교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음악보다 살아계신 하나님, 기도의 영, 말씀의 영, 정결의 영이 잘 전달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며 “비록 피아노 선율밖에 없지만 듣다보면 가사까지 따라 부를 수 있는 찬송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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